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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 달을 품은 마을 이름 [서울]

by 터무니씨 2024. 2. 25.

신월동 - 양천구

넓은 주택가를 이루고 있는 신월동(新月洞) 이름을 들여다보면 ()’자가 눈에 띈다. 이는 땅의 모양에서 따온 것인데, 조선 시대 고을 원님이 양천향교를 지나 현 화곡아파트 부근 돌다리 앞에 이르러 전망을 보니 마을이 신선하고 반달 모양을 하고 있어신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신월동 동명은 조선시대 이 고을 원님이 마을이 신선하고 반달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새 ‘신()’자와 달 ‘월()’자를 따서 신월리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특히 마을은 달빛이 밝게 비추어 운치가 넘쳤다고 한다.
당시 마을은 지금의 양서중학교 서쪽에 위치했으며, 이후 여러 마을이 편입되면서 오늘날의 신월동이 되었다.

  • 신월동은 조선 초기까지 양천현 지역이었으나 곧 금천군이 되었다.
  • 인조 때 양천군으로 잠시 승격되었다가 숙종 때 다시 양천현이 되었다.
  • 갑오개혁 직후인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양천군 장군소면이 되었다.
  •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양천군은 김포군 · 통진군과 합하여 김포군이 되었고, 양천군 장군소면의 신월리 · 고음월리 · 당곡리를 합하여 김포군 양동면 신당리로 하였는데, 이들 마을 중 비교적 규모가 크고 중심 지역인 신월리와 당곡리의 이름을 각각 따서 신당리라 한 것이다.
  •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한 서울시역 확장으로 김포군의 양동면과 양서면(옛 양천군 지역)이 서울특별시역에 편입될 때 신당리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월동이 되었다.
    이때 동명이 바뀐 것은 서울특별시로 편입될 때 다른 지역에 이미 신당동이 있기 때문에 신월동으로 바꾼 것이다.
  • 1977년 9월 1일 대통령령 제8666호로 영등포구에서 분리하여 강서구를 신설할 때 신월동은 강서구에 속하였다.
  •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367호로 강서구에서 양천구를 신설하였는데 신월동은 양천구 관할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야기 하나 더
신월동에는 시민들을 위한 친환경 호수 공원인 서서울호수공원이 있다. 
중앙 호수, 옥상정원, 재생정원  공원 곳곳에 매력적인 휴식처가 가득하다. 
또한 가을철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늦가을의 정취를 즐길  있다.

 

 

월계동 - 노원구

 

서울특별시 노원구는 원래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노원면과 해등촌면) 지역이었다. 1963년에 와서야 서울시로 편입되었는데, 노원구의 법정동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지명을 가진 곳이 바로 월계동(月溪洞)이다.  ' ()', '시내 ()' 따서 이름 지은 월계동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맑은 시냇물에 달이 비치고, 중랑천과 우이천으로 둘러싸인 모양이 ‘반달과 같은 형상’이라고 해서 1911년 무렵부터 사용하였다. '' 인연이 깊은 월계동에는 달과 함께 산책할 있는 길이 있다.
석계역문화공원에서 월계1 동신빌라로 이어지는 우이천 길에 초승달부터 그믐달까지 다양한 달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명을 설치해 월계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낼 있다.

 

이야기 하나 더
월계동의 자연마을 가운데는 ‘녹천(鹿川) 마을’의 지명이 오래되었다. 녹천마을은 초안산 계곡물이 서쪽으로 흘러 우이천으로 유입되거나 동쪽으로 흘러 중랑천으로 유입되는데, 우이천과 중랑천이 합쳐지는 모양이 사슴 머리에 난 뿔과 같다고 해서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사슴에게 시집을 간 염 씨 처녀, 조선시대 세종의 6대손 이유(李濡)와 연계해서 전해지는 지명유래도 있다.
녹천 마을은 현재의 월계2동 683번지와 685번지 일대의 마을이다.

 

 

하월곡동 - 성북구

하월곡동(下月谷洞) 지역에 있는 산의 형세가 반달을 닮았다 하여 산과 인접한 마을을다릿골(월곡·月谷)’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지역을웃다릿골’(상월곡), 아래 지역을아랫다릿골’(하월곡) 이라 불렀다.

그런데월곡이란 동명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후기 미아삼거리에는 솔밭이 많아 경관이 수려해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는데, 지방에서 소를 몰고 올라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장위동에 있던 도살장으로 소를 팔고 돌아갔다.
이들이 달밤에 도착해 새벽녘의 희미한 잔월이 떴을 소값을 흥정했다는 데서 월곡이라는 동명이 생겼다고 한다.

 

  • 1914년 경기도 도내 각 면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제정할 때 상・하월곡동은 통합되어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월곡리가 되었다.
  • 1949년 대통령령 제159호에 의해 동대문구에서 성북구가 분리・신설됨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의 상・하월곡리, 미아리, 정릉리 등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어 성북구에 소속되었다.

 

이야기 하나 더
하월곡동에는 올해 5월에 개관한 오동숲속도서관이 있다.
월곡산 자락인 오동공원 내에 자리한 도서관으로, 자연의 향기를 느끼며 책을 읽을 있다.
또한 월곡산은 유아숲체험원, 치유의 숲길 여러 시설이 조성되어 있어 가볍게 산책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